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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의 F-Lab 온보딩 10일 회고

저는 틀리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수능도 5개만 틀렸습니다.

저는 이미 자리 잡은 큰 기업들은 못 다녀봤어요. 스타트업다녔죠. 창업은 전부 실패했습니다. 스타트업이든, 창업이든 틀리는 게 일상입니다. 보통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길로 가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괴로웠습니다. 너무 안 맞아서요. 틀리지 않고, 낯설고, 속쓰린 경험 없이 성과가 안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대학 다니면서도 비슷했습니다. 제가 들어간 동아리 셋 중 둘은 제 손으로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진 제가 "대본 보는 눈이 없는 명배우"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똑똑하고, 성실했다고 믿었죠.

최근 2-3년 들어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시장에서는 옳고 그른 게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부터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꽤 오랫동안 과외는 나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과외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예외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공지영 작가의 성이 모두 다른 세 자녀 중 막내아들의 수학 과외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쁜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교육에 대해서 다소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하는 '성적 향상'이라는 진짜 필요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주로 예술이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했고, 창업도 "이런 방향으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당위적 접근으로 했습니다.

잘 될리가 없죠.

주변 사람들은 응원하고 칭찬하고 격려했지만, 아무도 제 제품/서비스를 사지 않았습니다. 대개 타겟 고객과 지인이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사실 문제는 창업자 자신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저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거였습니다.

대학원은 마쳤지만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결혼식도 취소되고, 핸드폰이 불탔습니다(자가 수리 중 배터리 산화). 이게 지난 10월의 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여자친구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마련해둔 자금이 있었고, 결혼식은 취소되었지만 우리 관계는 더 단단해졌으며, 약간 버벅이지만 사용에 문제가 없는 구형 아이폰이 한대 있었습니다.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마침 지인이 시드를 어마어마하게 받은 회사에 합류했다면서, 지원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서류도 내고 면접을 봤습니다. 신났죠. 그리고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고 탈락했습니다.

"생각의 흐름이 기대보다 덜 구조적이다."

이 피드백은 생각보다 많이 아팠습니다. 그 말이 옳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동안의 업무경험과 창업 시도를 통해 (특히 실패하고 나서) 스스로도 느껴왔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전히 예전의 습관과 접근을 고수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에프랩을 만났습니다. 피츠, 리키, 케빈과 면접을 했죠.

에프랩 사무실 입구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사실 좀 별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하나도 안 친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사무 공간도 따로 없어서 좀 당황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분들은 멘티들이고, 우리 업무 공간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제가 그냥 알고 있는 것들을 답했을 뿐인데 면접을 보는 (특히 리키의) 리액션이 무척 긍정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선 인터뷰에서 "구조적 사고의 부족"을 지적받아서, '앞으로는 면접 볼 때 좀 더 점잖게, 침착하게 굴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에프랩의 면접자들은 이런 저의 방어심리를 완벽히 해체시킬만큼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말에 피츠를 한번 더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꼭 함께 하고 싶어졌습니다. 합류하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나오고, 머리에 USB를 직접 꽂아서 지식을 주입할 수 있는 시대가 와도 인간이 학습하는 근본적인 방식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맥락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훌륭한 바리스타가 되려면 커피의 종류를 외우는 것보다, 커피의 맛과 향을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내가 기존에 가진 음식에 대한 정보(떡볶이는 매콤하고 달콤하다)와의 조정과 연결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업을 가장 수월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내용을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입니다. 그것은 에프랩이 하고 있는 것처럼 멘토일 수도 있고, 같은 기수의 멘티들일 수도 있고, 혹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전혀 뜻밖의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교육을 비즈니스로, 또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된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양식으로 보고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시도해왔습니다.

그리고 피츠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에 부합하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 분야에 대해서, 그래서 가장 부가가치가 큰 새로운 교육상품을 가장 고전적인 (사실은 가장 오랜 세월 속에서 검증된) 멘토링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말로 크게 놀랐습니다.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지만, 앞으로 에프랩의 모든 분들과 얼마나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아침에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입니다. (요즘 아침에 너무 일찍 깨서 큰일입니다...)

매일매일이 설레는 요즘입니다.

두서 없는 에프랩 10일차 회고 끝.